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님
본문 바로가기

피플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님

반응형

 

야구팬들에게는 '야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80대인데도 정정한 그, 김성근 감독님이다.

2022년 10월 16일, 약 50년의 다사다난했던 커리어를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마지막은 일본 리그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 프로야구 전체 구단 중 최고령 지도자였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나는 감독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최강야구를 보면서 야구밖에 몰랐던 그가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커리어를 밟아온 것일까. 그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 분야에 오래 몸담았기 때문에 각종 논란과 구설이 많다. 이 글에서는 그런 것을 배제하고 그가 살아온 생애, 쌓은 커리어와 뱉은 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재일교포 출신


김성근 감독님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다수의 언론들은 그가 일본에서 자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하고 힘들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처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한 인터뷰를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싸움을 잘해서 이후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그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고3 때 재일동포야구단에 포함되면서야 전교생이 알게 되었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때 우익수 포지션이었다. 그 당시에는 제일 못하는 사람이 우익수였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교토 헤이안고를 비롯한 지역 야구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립고교인 교토 가쓰라고에 입학했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가쓰라고에서는 야구부라도 주 5일 정규 수업을 듣고, 주말에만 경기했다고 한다.

 

"가쓰라 고등학교 때 감독이 일반 교사였는데 한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해서 배울 게 없었어요. 나머지는 내가 창조하고 창의해서 해야 했죠. 야구잡지에 나오는 선수들의 연속사진을 보고 흉내 내면서 배웠어요."

 

그렇게 잡지를 보고 돌멩이에 강을 던지는 등 훈련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연습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3학년들이 졸업하고 던질 투수가 한 명 밖에 남지 않자 던져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렇게 투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가쓰라고 야구부가 전국대회에 나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야구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을 때... 그는 1959년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에 포함되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후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2. 리빙딜 전문가


그가 야구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한 결정적인 것은 약한 팀을 맡아 중상위권으로 올려 놓았던 전적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위권 팀인 태평양 돌핀스나 쌍방울 레이더스를 이끌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것이 그 예로 언급된다. 또한 강팀이라기엔 아쉬웠던 SK 와이번스를 2000년대 후반 왕조 시대로 이끈 것도 있다.

 

OB 베어스에서 투수 코치를 하고 이후에 2대 감독에 올랐다. 하지만 5년동안 성적이 부진했고 결국 경질당했다. 이후에 새로 창단한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당시 정신력을 강조했는데,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야구를 하는지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현재 최강야구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가끔 보이는데 일부 사람들은 불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처럼 별생각 없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이후 삼성 라이온즈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최악의 감독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처럼 어느 구단에서는 긍정적이고 어느 구단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데, 그만큼 오래 야구판에 있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경질 이후 잊히다가 쌍방울 레이더스의 감독으로 돌아온다. 당시 쌍방울은 1991년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보지 못했다. 꼴찌를 많이 하는 최약체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가 부임하고 구단 사상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해태를 그리워하던 전주 사람들에게도 홈 팀으로 받아들여졌다. 쌍방울 시절부터 팀과 같이 해 온 박철호 SK 와이번스 전 홍보팀장은 김성근의 업적에 대해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 전주구장에 암표장사가 나타났다. 이거 하나로 충분하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여러 구단을 돌고 일본도 돌다가 2007년에 SK 와이번스의 감독에 취임한다. 강훈련과 일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투수 운용을 유연하게 했고, 2007년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구단 최초이자 김성근 감독 생애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통합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패 후, 4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그렇게 2007년, 2008년, 2009, 2010년에도 4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하게 된다. 

 

 

 

 

 

3. 최강야구


이승엽 감독님이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가게 되면서 김성근 감독님이 최강야구의 2대 감독으로 오게 되었다. 2023년 2월 4일 기준 총 3~4번의 경기가 나왔는데, 한 번 지고 나머지는 다 이겼다. 패배한 이후에 모든 것을 그때와 다르게 하려고 하는 등, 패배 징크스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2월 6일에는 최강야구 1대 감독이자 자신의 제자였던 이승엽 감독님이 이끌고 있는 두산 베어스와 경기를 치른다. 2군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고편을 보니 허경민, 강승호 등 1군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기대된다. 또한 원클럽맨으로 두산을 은퇴했던 유희관과의 만남도 기대된다.

 

 

 

 

미디어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점을 더 부각하여 보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80세가 넘는 나이까지 야구계에 있는 그를 보며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이 했던 어록을 남기며 마무리하겠다.

 

一球二無 :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