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시작해 정상을 찍은 밴드, 언니네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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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거짓말로 시작해 정상을 찍은 밴드, 언니네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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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내가 아직도 듣는 노래가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2008년 발매)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 표지

 

들을 때마다 '아 이 사람들 좀 천재 같은데.' 싶었는데,

그 생각과 감정이 지속되다보니 궁금증에 도달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던 사람들일까?


 

1994년 결성된 밴드로 마지막 멤버는 3명이다.

이석원 (보컬,기타), 이능룡 (기타), 전대정 (드럼)

 

2017년 8월 7일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독창적인 음악성을 가진 한국 모던 록 계열 인디밴드의 모태이다.

명반으로는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2집 후일담,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있으며,

특히 5집은 나이 40을 넘는 음악활동의 후반기에 전성기 시절의 작품을 비평적, 상업적으로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다.

5집의 앨범 판매량은 15만장 이상.

 


그들의 시작은 거짓말.

1990년대 초반에 하이텔 음악 동호회에서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악인들도 많았다. 음반가게 사장이던 이석원은 이러한 음악인들을 엄청나게 까는 네티즌으로 유명했다. 그러던 이석원은 PC 통신의 메탈 동호회 '메탈동'에서 류기덕과 함께 '모던 락 소모임'이라는 모임을 만드는데 자신이 진짜 음악인이 아니라는 것이 들통날까봐 게시판에 자신도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리더라고 구라를 쳤다.

 

그런데 꾸준하게 거짓말을 하던 이석원은 KBS 라디오 '전영혁의 음악세계'까지 출연하게 되고, 결국 정말로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키보드, 베이스를 구했는데 재밌는 건 이석원만 밴드 리더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악기 연주를 하지 못하면서 연주자라고 거짓말을 했다. 멤버 전원이 서로에게 거짓말을 한 것.

 

이렇게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거 같았던 사건이 이석원과 윤병주의 인연으로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1993년 이석원의 레코드 가게에서 만난 윤병주와 이석원은 친구가 되고, 윤병주가 제1회 톰보이 록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석원이 진짜 음악인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결국 윤병주의 권유로 이석원은 음악을 시작하고 4인조 밴드를 완성한다.

 

1995년 7월 29일 홍대 클럽 드럭에서 기타리스트도 추가된 5명이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 당시 홍대씬에는 너바나와 메탈리카를 필두로 한 커버곡들로 가득했는데 언니네 이발관은 최초로 셋 리스트를 자작곡으로 채우며 떠오르는 루키가 됐다. 1996년 2월 밴드는 첫 데모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매하고, 이 데모는 대형 기획사의 손으로 들어가 밴드는 금전적 지원을 받게 된다. 그들은 영국까지 날라가 런던의 메트로 폴리스 스튜디오에서 유명 엔지니어 이안 쿠퍼에게 마스터링을 받아 1996년 10월 데모와 동명의 정규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매한다. 

 

동시대의 얼터너리브 록을 한국에 도입하는 등, 음악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결과물을 담고 있었고, 이후 수많은 인디밴드에 영향을 주면서 한국 인디신을 형성한 모태가 되었다. 

 

 

2집 <후일담> 앨범표지

 

1집 성공 이후 모두 각자의 길로 흩어져 이석원 혼자만 남게 되지만, 다른 멤버들이 합류하였고 수능을 보러 갔던 정대욱(현재 가을방학으로 활동중)이 연세대학교에 합격해 금의환향하며 밴드는 다시 진열을 갖추고 199년 2집 <후일담>을 발매한다. 하지만 이것이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하면서 밴드는 무너진다. 결국 또 다시 이석원은 혼자 남게 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집 실패 이후 밴드는 사실상의 해체 수순에 들어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2집 <후일담>이 점차 다시 주목받게 되고, 당시 유일한 국내 인디락 페스티벌이던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2001에 초대되어 3년 만의 컴백을 하게 된다.

 

이석원은 3집을 작업할 마음이 없었지만 아픈 강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음악계로 돌아오고, 2002년 3집 <꿈의 팝송>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인디씬 역사상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으며, 평 역시 2집에 비해 따뜻했다.

 

하지만 이석원과 언니네 이발관은 2003년 밴드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상문이 간경화로 인한 윌슨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2004년 그들은 4집 <순간을 믿어요>를 이상문 헌정반으로 발매한다. 그리고 또 이후에는 흐지부지 흩어진다.


 

2008년 최고의 한국 앨범

어느 날 이석원은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다시 뭉쳐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작업을 시작하였다. 5집이 발매되자마자 최고의 한국 앨범으로 꼽히면서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올해의 모던록 음반', '올해의 모던록 노래'부분에서 3관왕을 달성하였다.

 

나의 최애곡 또한 여기 5집에 있다.

 

01. 가장 보통의 존재

 

03. 아름다운 것 (타이틀)

 

 

무수히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특유의 멜로디와 목소리. 여기의 보컬은 대부분 이석원이 했다고 하니, 그 특유의 잔잔한 목소리를 들어보길 바란다. 가사가 핵심 포인트인데, 저작권상 올릴 수 없으나 꼭 가사를 음미하며 들어보길 바란다.

 


마지막 (2017.08.07)

소식이 늦었습니다.
어려운 말씀을 드려야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서야 예전에 써 둔 편지를 올립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미안해요.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그만 두길 바래왔어요.
하지만 어딘가에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털어놓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한번만
이번 한장만 하다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그간 실천하지 못한 계획들도 있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서 인사드리고 떠나면 좋겠지만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음악이 일이 되어버린 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벗어나고 싶어했기에
음악을 할때면
늘 나 자신과 팬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더이상은 그런 기분으로 무대에 서고 싶지 않음을..
이렇게밖에 맺음을 할 수 없는
제 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는 음악을 그만 두고
더이상 뮤지션으로 살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23년동안 음악을 했던 기억이
모두 다
즐겁고 행복했었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운 기억만은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훗날 언젠가
세월이 정말 오래 흘러서
내가 더이상 이 일이 고통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기분으로
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찾아 뵐게요.

감사합니다.

23년동안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것
잊지 못할 순간들을 만들어 주신것
모두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2017년 8월 6일 저녁 이석원 올림

- 아이유는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후배로서 영광, 잊지않겠다." 라고 말했다.

 

당시 기사 사진

 

 

 

- 장기하는 #수요일은음악프로라는 방송에 2019년에 나와서 "인생은 금물"이라는 노래를 소개한 적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6OEaX3OSTU

 

- 장범준은 2020년 "아름다운 것" 커버 영상을 올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aD-_l2z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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